베잘렐 헐버트 - 한글 띄어쓰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베잘렐 헐버트 - 한글 띄어쓰기 정보

베잘렐 헐버트 - 한글 띄어쓰기

본문

http://sir.co.kr/cm_free/1142744 에 이어서.. 

 

조선의 개화기 때 수많은 서양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왔습니다. 개중에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탐사하려는 목적을 지닌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든 조선을 이용해 한몫 크게 잡아보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두 속성이 결합된 사람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조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 서양인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호머 베잘렐 헐버트가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15055A044C4562DC6DAB06
 
헐버트는 미국의 선교사로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입국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밑에서 공부했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에 대단한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열심히 배운 학생도 있었지요. 대표적인 인물이 당대 최고의 영어능력자였던 이완용..... 
 
그는 자비로 과외선생을 따로 구할 정도로 한글 공부에도 열심이었습니다. 3년 정도 공부한 뒤에는 직접 <사민필지>라는 한글 교과서를 저술해 육영공원의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능숙하게 우리말을 사용했지요. <사민필지>는 우주 및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책으로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있던 서적이었습니다. 현재의 세계지리 교과서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사실 헐버트는 한글 발전에 상당한 공이 있는 인물입니다. 우리말에서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띄어쓰기와 점찍기는 그의 건의로 시행된 것이지요. 이전까지 우리말에서는 띄어쓰기가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문법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죽을 맛이기는 합니다만.... 
주시경이 한글을 연구한 국문연구소도 그의 건의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육영공원이 재정상의 문제로 축소되어 퇴직한 헐버트는 조선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다양한 근대식 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미국으로부터 인쇄기를 들여왔으며 외국에 대한 조선 홍보 활동을 벌였지요.  
 
고종의 신임을 받은 헐버트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외교적 자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을사조약 이후에는 이 사건의 불법성과 무효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했지요. 
특히 유명한 것은 헤이그 특사와 관련된 일이겠습니다. 그는 일제의 영향력이 덜 미치는 외국인이라는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헤이그 특사 파견을 위한 사전작업을 담당했지요. 그래서 그를 이준,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제 4의 특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헤이그 특사들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헐버트는 일제에 의해 추방당합니다.  
 
이후로도 헐버트는 우리의 독립을 위해 힘썼습니다.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미국 전역의 각종 회의에 참여하여 일제의 침략행위를 규탄했고 한국의 독립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지요. 이승만과 같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경력도 있습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생기고 1년 뒤인 1949년,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헐버트를 국빈으로 초대합니다. 당시 헐버트는 기관지염으로 병약한 상태였으나 기필코 한국으로 가겠다고 말하지요. 출국하면서 언론에 한 말이 명언입니다.  
 
"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미권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만 안치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아이작 뉴턴이나 찰스 다윈, 제프리 초서 같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이곳에 묻혀있지요.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가 한국에 온 또 하나의 이유는 고종이 남긴 비자금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헐버트가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 고종은 ‘상하이 독일은행’에 맡겨놓은 비자금을 찾아 독립운동에 투자할 것을 부탁했지요. 하지만 헐버트가 은행을 방문했던 시점에는 이미 일제가 이 돈을 다 빼간 상태였습니다. 이제 독립을 했으니 고종의 마지막 명령을 지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지요. 
 
하지만 헐버트는 입국한지 일주일이 된 8월 5일에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합니다. 그가 정부에 넘겨준 비자금 관련 서류는 현재까지 국립정부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지요.  
  
헐버트는 어니스트 베델, 프랭크 스코필드와 같은 인물과 함께 조선을 구하기 위해 활동한 대표적인 서양인으로 꼽힙니다. 예전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뽑히기도 했지요. 정부는 1950년에 그의 독립운동 활동 공로로 ‘건국공로훈장’을, 2014년에 한글 보급 공로를 인정하여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현재 그의 무덤은 서울 합정역 근처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의 유언과도 같은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는 글귀가 묘지명으로 새겨져 있지요. 

201510080821415315.PNG

 
추천
0
  • 복사

댓글 0개

© SIRSOFT
현재 페이지 제일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