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50m내에, 자취를 하고 있는 두 처녀와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사방 50m내에, 자취를 하고 있는 두 처녀와 정보

사방 50m내에, 자취를 하고 있는 두 처녀와

본문

사방 50m내에, 자취를 하고 있는 두 처녀와, 하숙을 하고 있는
두 총각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지금은 서울 시내버스가 다니고 지하철이 다니는 번화가지만
그 때는 을지로 6가에서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몇시간을 가야하는 아주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집에 들렸다가 하숙집으로 가기위해 그 하루에 한두번
밖에 다니지 않는 그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어쩌다 막차를
타게되면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으며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서
하숙집으로 가야하는 그런 아주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문화시설이라고는 날짜 지난 신문이나 뒤적이는게 고작이어서
저녁먹고 하숙집 대청마루에 앉아 새파란 푸른 하늘에 별이나
세어보는게 하루의 일과 였습니다.

한여름 더운 오후에는 수박이라도 하나 찬물에 담궜다가 50m 안에
살고 있는 두 처녀 초청해서 환담이라도 나눌법 했지만
그런 발상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것은 비록 동네사람들의
무서운 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고까짓껏 했습니다.

이왕 자취를 하고 있는 두처녀도 국수 다발이나 좀 삶아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두총각을 초정해서 환담이나 나눌법 했지만
그런 머리까지는 굴리지 못했습니다. 모르는척 했습니다.

하숙집 대청마루에 앉아서 나는 내 별이나 세어보고 지는 지 별이나
세어보면서 그렇게 몇년이 지났습니다.

경부고속도 건설을 위한 불도저의 엔진소리가 요란할 그 때쯤
한 처녀는 발령장 한장들고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 다른곳으로 전근을 가서
사방 100km 안에 두 처녀와 두 총각이 살고 있었습니다.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어쩌다 얼굴을 스쳐 보기도 했지만
지는 지 별 세어보고 나는 내 별이나 세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인연이라는 것이 있나요 ?
사방 50m 안에 살던 그 인연으로 지금은 사방 5m안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집 주소도 같고 방 주소도 같지만 침대주소만 틀리는 우리
할망구(?)의 옆 얼굴을 쳐다보면서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나머지 한 총각과 한 처녀도 50m 인연으로 짝이 되었고
아들 딸 낳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풍문을 들었습니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
내가 만약 풍문에만 듣고 있는 또 다른 한 처녀와 인연을 맺었다면
우리 할망구(?)는 누구의 짝이 되었을까 ?

지금쯤, 나는 그 때의  또 다른 한 처녀가 끓여주는 커피 마시고 있겠고
우리 할망구(?)는 또 다른 누구의 커피를 끓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할망구(?)는 남이 되었을 것 아닌가 ?
갑자기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논두렁 받두렁 걷던 그 때처럼
텅텅 빈 심정이 됩니다.

한마디 했다고 섭섭하다느니 너무하다느니 하면서 토라져 자고 있는
우리 할망구(?), 미워도 미워도 아주 남이 될뻔했던것 보다는
참으로 다행이다 싶어 자는 얼굴 한번 더 들여다봅니다.

추천
0
  • 복사

댓글 5개

직접 쓰신 글인가요? ^^
한 여름밤에 선풍기 틀어놓고 소파에 길게 누워 수필 한 편 읽는 기분이 드네요 ^^
잘 쓰셨어요 ㅎㅎ
와~ 교과서에 나왔던 아사코 ... 뭐죠? 헐... 기억이... 인연? 만남? 이별?
그 이야기가 여하튼 떠오릅니다. 윽... ... 늙고 있다...
© SIRSOFT
현재 페이지 제일 처음으로